아이신기오로 인청
아이신기오로 인청 (愛新覺羅 胤礽, 애신각라 윤잉, 1674년 6월 6일 - 1725년 1월 27일)은 청나라의 황족이자 강희제의 둘째 아들이다. 훗날 폐태자로 불리며, 청나라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황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생애
인청은 강희제의 두 번째 황후인 효성인황후 (孝誠仁皇后) 허셔리 씨 (赫舍里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성인황후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강희제는 인청을 극진히 아끼고 총애하여 생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황태자에 책봉했다. 이는 청나라 역사상 유일한 황후 소생의 황태자 책봉 사례이다.
강희제는 인청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했고, 인청 역시 학문과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점차 오만하고 방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강희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잦아졌다. 또한, 인청을 지지하는 세력과 다른 황자들을 지지하는 세력 간의 암투가 끊이지 않아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1708년, 강희제는 인청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명목으로 황태자 폐위를 선언했다. 이후 인청은 유폐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강희제는 인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709년 다시 황태자로 복위시켰다. 그러나 인청은 복위 후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고, 강희제는 1712년 다시 한번 인청을 황태자에서 폐위하고 영원히 유폐시켰다.
인청은 유폐된 지 13년 만인 1725년, 옹정제 (강희제의 넷째 아들) 시대에 사망했다. 사망 후 '이밀친왕 (理密親王)'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평가
인청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황태자라는 지위와 강희제의 과도한 총애로 인해 오만하고 방탕하게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두 번이나 폐위된 비운의 황태자라는 점에서 청나라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고 자료
- 청사고 (清史稿)
- 강희제실록 (康熙帝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