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북진 정책
고려의 북진 정책은 10세기부터 12세기 초에 걸쳐 고려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려 했던 일련의 대외 정책을 지칭한다.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북진 정책을 국가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배경
- 고구려 계승 의식: 고려 태조 왕건은 고구려의 후예임을 강조하며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평양을 중시하고, 북방 영토 회복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 민족 통합: 북진 정책은 분열된 민족을 통합하고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 국방 강화: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고 안정적인 국방선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 경제적 이익: 북방 지역의 자원을 확보하고 교역로를 확장하여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자 했다.
전개 과정
- 태조 왕건: 왕건은 서경(평양)을 중시하고 북진 기지로서 활용하며 북방 민족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했다.
- 정종: 서경 천도를 시도하며 북진 정책 추진 의지를 드러냈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 광종: 과거제를 실시하여 왕권 강화를 꾀하고 북방 개척에 필요한 인재를 등용하고자 했다.
- 성종: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체제를 확립하면서 북진 정책은 다소 소극적으로 변화했다.
- 숙종: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을 창설하고 여진족 정벌을 추진했다.
- 예종: 윤관의 지휘하에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축조했으나, 여진족의 반환 요구와 내부의 반대로 인해 1년 만에 돌려주었다.
결과 및 영향
- 고려는 북진 정책을 통해 압록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북방 민족과의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 동북 9성 반환 이후 북진 정책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이후 고려는 서경보다는 개경을 중심으로 하는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 북진 정책은 고려의 대외 관계와 국방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조선 시대의 북방 정책에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