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고에 성 전투
가와고에 성 전투는 일본 센고쿠 시대인 덴분 14년(1545년)부터 이듬해인 덴분 15년(1546년)에 걸쳐 무사시국 가와고에 성(현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을 둘러싸고 호조 가문과 우에스기 씨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특히 1546년에 벌어진 야간 기습전에서 소수의 호조군이 압도적인 대규모의 우에스기 연합군을 격파하며 센고쿠 시대의 3대 기습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명한 전투로 기록되었다.
배경
1530년대부터 간토 지방에서의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던 사가미국의 호조 가문(오다와라 호조 씨)에 대항하기 위해 무사시국의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씨의 우에스기 도모사다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씨, 그리고 간토 간레이(관동관령)인 고가 구보(古河公方) 아시카가 하루우지 등이 동맹을 맺었다. 이들은 호조 가문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이자 무사시국 지배의 요충지인 가와고에 성을 공략하여 호조 가문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자 했다. 덴분 14년(1545년) 9월, 우에스기 도모사다를 총대장으로 하는 약 8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연합군이 가와고에 성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와고에 성은 호조 쓰나시게가 불과 3천 명의 소수 병력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성은 오랫동안 농성하며 버텼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전투 경과
이듬해인 덴분 15년(1546년) 4월, 성이 궁지에 몰리자 호조 우지야스는 성을 구원하기 위해 약 8천 명의 구원군을 이끌고 가와고에로 향했다. 우지야스는 대규모의 연합군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성 안의 호조 쓰나시게와 긴밀히 연락하여 기습 작전을 계획했다. 우지야스는 휘하 병력에게 갑옷과 무장을 가볍게 하고, 야간 전투에 대비하도록 명령했다. 한편, 연합군은 대규모 병력에 안심하고 장기간의 포위로 인해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우지야스는 구원군을 8개 부대로 나누어 4월 20일 밤(혹은 21일 새벽)에 연합군 진영을 향해 야간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동시에 성 안의 호조 쓰나시게 부대도 성문을 열고 뛰쳐나와 연합군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야습과 내응에 연합군은 큰 혼란에 빠졌고, 어둠 속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며 지휘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우에스기 도모사다는 혼전 중에 전사했고, 연합군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붕괴되어 각지로 패주했다.
결과 및 영향
가와고에 성 전투에서 호조군은 불과 1만여 명(구원군 8천 + 농성군 3천)의 병력으로 8만에 달하는 대규모 연합군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연합군은 총대장 우에스기 도모사다를 포함한 다수의 유력 무장과 막대한 병력을 잃고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씨는 사실상 멸망했으며,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씨와 간토 간레이 아시카가 하루우지의 권위도 크게 실추되었다. 가와고에 성 전투의 대승을 통해 호조 가문은 무사시국에서의 지배력을 확고히 다졌으며, 간토 지방에서의 패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 전투는 소수의 병력이 대규모 병력을 기습과 지략으로 물리친 센고쿠 시대를 대표하는 전술적 승리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같이 보기
- 호조 우지야스
- 센고쿠 시대
- 가와고에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