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
5.16 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을 주축으로 한 군인들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이다. 당시 장면 내각의 무능과 사회 혼란을 명분으로 내세워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거쳐 대통령에 취임하여 18년간 장기 집권했다.
배경
- 사회·경제적 혼란: 4.19 혁명 이후 수립된 장면 내각은 사회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정부패, 빈곤, 실업 등이 만연하면서 사회 불만이 고조되었다.
- 군부의 불만: 군 내부에서는 만성적인 인사 적체와 낮은 처우에 대한 불만이 존재했다. 또한, 4.19 혁명 이후 군의 정치적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다.
- 미국의 영향: 미국의 대한 정책은 장면 내각의 안정적인 통치를 지지하는 방향이었으나, 일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사회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군사 정부에 대한 기대도 존재했다는 해석도 있다.
경과
- 쿠데타 발발: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인들이 서울을 장악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 장면 내각 붕괴: 쿠데타군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혁명 공약을 발표하고, 장면 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을 체포했다. 장면 내각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 국가재건최고회의 수립: 쿠데타 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수립하여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장악했다.
결과 및 영향
- 군사 정권 수립: 5.16 군사정변으로 대한민국은 군사 정권 시대로 접어들었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으며, 이후 대통령에 취임하여 장기 집권했다.
- 정치적 탄압: 민주주의적 제도가 억압되고, 정치 활동이 제한되었다. 언론 검열이 강화되었으며, 반공을 명분으로 한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었다.
- 경제 성장: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 억압, 농촌 소외 등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 사회 문화적 영향: 강력한 국가 주도하에 사회 질서가 확립되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었다. 또한,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농촌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논란
- 정당성 논란: 5.16 군사정변은 헌법 질서를 파괴한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평가 논쟁: 5.16 군사정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같이 보기
- 박정희
- 국가재건최고회의
- 유신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