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황후 상관씨
효소황후 상관씨 (孝昭皇后 上官氏, 기원전 89년? ~ 기원전 37년)는 전한(前漢)의 제8대 황제인 효소제(孝昭帝) 유불릉(劉弗陵)의 황후이다. 성은 상관(上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대장군 곽광(霍光)과 권력 다툼을 벌였던 좌장군 상관걸(上官桀)의 손녀이자 거기장군 상관안(上官安)의 딸이다.
생애
상관씨의 결혼은 당시 전한의 권력 구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효소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대장군 곽광, 거기장군 상관안(상관씨의 아버지), 좌장군 상관걸(상관씨의 할아버지), 어사대부 상당(桑弘羊), 전한 무제의 누이인 개장공주(蓋長公主, 또는 악읍공주 鄂邑公主) 등이 공동으로 섭정을 하였다. 이 중 곽광과 상관걸, 상당, 개장공주 세력은 권력 다툼을 벌였다.
상관안은 자신의 딸을 황후로 삼아 세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개장공주의 총신이었던 정외인(丁外人)과 공모하여, 6세의 어린 상관씨를 효소제(당시 12세)의 황후로 들였다. 기원전 83년의 일이었다.
황후가 된 후에도 상관씨의 가족(상관걸, 상관안 등)은 곽광을 제거하려 했으나, 기원전 80년에 발각되어 상관걸, 상관안 등이 주살(誅殺)당하고 개장공주는 자살했다. 그러나 상관씨는 곽광의 배려로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되지 않고 유지되었다.
효소제는 기원전 74년에 자녀 없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상관황후는 황태후(皇太后)가 되었다. 곽광은 황실의 먼 친척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황제로 옹립했으나, 유하가 즉위 후 행실이 좋지 못하자 곽광은 황태후의 동의를 얻어 즉위 27일 만에 유하를 폐위시켰다.
이후 곽광은 또 다른 황족인 유순(劉詢)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이가 곧 효선제(孝宣帝)이다. 효선제는 효소제의 조카뻘이 아닌 증조할아버지뻘(전한 무제의 증손자)이었으므로, 효소황후 상관씨는 황태후에서 태황태후(太皇太后)로 격상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5세에 불과했다.
태황태후로서 곽광의 사후 곽씨 세력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효선제가 사망하고 효원제(孝元帝)가 즉위하는 것까지 겪었다. 그녀는 전한의 황후 중 가장 오랫동안 태황태후의 지위에 있었고, 약 52세의 나이로 기원전 37년에 사망하였다. 효소제와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