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운 유적
최고운 유적은 신라 말기의 문장가, 학자, 사상가였던 최치원(崔致遠, 857년 ~ ?)과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나 흔적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하고 관직에 올랐으나, 신라로 돌아온 후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으려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곳을 유람하다 만년에는 가야산 등지에서 은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운 유적은 그의 이러한 생애와 활동, 그리고 관련된 설화와 기록이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여기에는 그가 비문을 쓴 비석, 머물렀거나 거쳐간 사찰, 학문을 연구하거나 풍류를 즐겼던 장소, 그를 기리는 사당 등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최고운 유적으로는 그가 은둔했다고 전해지는 가야산 일대와 해인사(海印寺), 그리고 그가 비문을 찬술한 쌍계사(雙溪寺)의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 국보 제47호)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전국 각지에 최치원과 관련된 다양한 유적과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최고운 유적은 특정 한 곳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궤적과 관련된 여러 역사적 장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최치원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신라 말기의 사회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