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
위정척사 (衛正斥邪)는 조선 말기, 서양 세력의 침략과 그에 따른 서학(西學), 즉 천주교의 전파에 반대하며 전통적인 유교 질서를 지키고 외세의 침략을 배척하자는 사상 및 운동을 의미한다. '위정(衛正)'은 '정학(正學)'인 성리학적 전통 윤리를 수호한다는 뜻이며, '척사(斥邪)'는 '사학(邪學)'인 서학을 배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경
19세기 조선은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서양 세력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조선에 문호 개방을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일부 유학자들은 서양 세력의 침략과 서학의 전파가 전통적인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전개
위정척사 운동은 초기에는 서학, 즉 천주교를 배척하는 데 집중되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서양과의 무력 충돌 이후에는 척화 주장이 더욱 강해졌으며, 개항 이후에는 외세의 경제적 침투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위정척사 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상소 운동, 의병 활동, 민중 봉기 등이 대표적이다.
사상적 특징
위정척사 사상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유교 질서를 옹호하고 외세의 침략을 배척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다. 또한, 자존심과 애국심을 고취하여 민족 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개혁을 저해하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했다.
영향 및 의의
위정척사 운동은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저항 의식을 고취하고 민족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지만, 쇄국 정책을 옹호하고 개화 세력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미쳤다. 이후 갑오개혁을 계기로 위정척사 운동은 점차 쇠퇴했지만, 그 정신은 항일 의병 운동 등으로 이어져 민족 운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