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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이달고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스페인어: Miguel Hidalgo y Costilla, 1753년 5월 8일 ~ 1811년 7월 30일)는 멕시코 독립 전쟁의 핵심 인물이자 국부(國父)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혁명가이다.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의 외침"(Grito de Dolores)으로 알려진 연설을 통해 스페인 식민 통치에 맞선 멕시코 독립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생애

미겔 이달고는 누에바에스파냐(현 멕시코)의 과나후아토 주에 있는 코레알레호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종교 교육을 받았으며, 1778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그는 목회 활동을 하면서도 계몽주의 사상과 농업 기술 개선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사목 구역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포도와 누에 양잠 등 스페인 당국이 금지한 작물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다. 그는 교양 있는 인물로 알려졌으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했다.

독립 운동 참여

19세기 초, 누에바에스파냐에서는 크리오요(현지 출생 스페인계 백인) 엘리트층과 원주민 및 메스티소 대중 사이에서 스페인 본국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스페인을 침공하고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7세를 폐위시킨 사건은 식민지 독립 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달고는 케레타로 등지에서 결성된 독립 지향 비밀 조직에 가담했다. 이들은 스페인 당국에 맞서 무장 봉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스페인 당국에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돌로레스의 외침과 봉기

1810년 9월 16일 새벽, 이달고는 과나후아토 주의 작은 마을 돌로레스(Dolores)의 성당에서 종을 울리고 사람들을 모아 연설했다. 이 연설이 바로 "돌로레스의 외침"이다. 정확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는 페르난도 7세에 대한 충성을 표방하면서도 스페인 통치에 반대하고 "미국"(식민지)의 독립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르헨 데 과달루페의 기치를 내세우며 원주민, 메스티소, 크리오요 농민 등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달고가 이끄는 봉기군은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여 과나후아토 주를 점령하고 멕시코 시티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대규모 민중군대는 약탈과 폭력을 동반하여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멕시코 시티 외곽까지 진격했던 이달고는 알쿠스코 전투에서 스페인 왕당파 군대에 승리했지만, 멕시코 시티 진입을 망설이다가 퇴각했다.

체포와 처형

왕당파 군대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봉기군은 수세에 몰렸다. 이달고는 미국으로 피신하여 지원을 얻으려 시도했으나, 1811년 1월 칼데론 다리 전투에서 패배한 후 동료들과 함께 북쪽으로 도피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는 종교 재판과 세속 재판을 거쳐 사제직을 박탈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1811년 7월 30일, 이달고는 치와와에서 총살당했다. 그의 머리는 다른 지도자들의 머리와 함께 과나후아토 알혼디가 데 그라나디타스 성벽에 걸려 독립 운동에 대한 경고로 전시되었다.

유산

미겔 이달고는 비록 독립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돌로레스의 외침"을 통해 멕시코 독립 운동의 불씨를 당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멕시코에서 "국부"로 존경받으며, 매년 9월 16일 멕시코 독립 기념일에는 대통령이 돌로레스의 외침을 재현하는 기념식을 거행한다. 그의 이름은 멕시코의 주, 도시, 거리, 학교 등 많은 곳에 붙여져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