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삼국지)
법정(法正, 176년 ~ 220년)은 후한 말 유비 휘하의 모사로, 자는 효직(孝直)이며, 사예 부풍군 미양현(司隸 扶風郡 郿縣, 현재의 산시성 메이 현) 사람이다. 유장 밑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유장의 유약함을 간파하고 유비를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뛰어난 책략과 상황 판단 능력을 바탕으로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유비의 총애를 받으며 중용되었다.
생애
법정은 젊은 시절 고향에서 명성을 얻었으나, 그의 곧은 성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 이후 익주로 들어가 유장의 밑에서 관직을 맡았지만, 유장의 우유부단함에 실망하고 익주를 떠날 생각을 품게 된다.
건안 16년(211년),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유비가 익주로 들어오자, 법정은 장송과 함께 유비를 돕기로 결심한다. 그는 유비를 익주로 유인하고, 유장이 익주를 빼앗기도록 계략을 꾸몄다. 법정의 활약으로 유비는 익주를 손에 넣게 되었고, 이후 유비는 법정을 중용하며 그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냈다.
유비가 한중을 공략할 때에도 법정은 뛰어난 책략을 발휘하여 유비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을 전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법정은 유비에게 “하후연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상황에 싸움을 걸기 때문에, 그가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고 진언했고, 이를 실행하여 하후연을 격파했다.
건안 25년(220년), 법정은 45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유비는 법정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그에게 익후(翼侯)라는 시호를 내렸다.
평가
법정은 뛰어난 지략과 통찰력을 지닌 모사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고 촉한을 건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유비의 전략적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성격은 다소 호불호가 갈렸다. 그는 은혜를 갚는 데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원한을 품으면 반드시 앙갚음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제갈량조차도 "법정이 살아 있었다면 유비를 제어하여 동쪽 정벌(오나라 정벌)을 막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하며 그의 영향력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