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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르지 공방전

몽타르지 공방전은 백년전쟁 중인 1427년 7월,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잉글랜드군이 프랑스의 전략적 요충지인 몽타르지 성을 포위했으나, 프랑스 구원군에 의해 포위가 풀리고 잉글랜드군이 패퇴했다. 이 전투는 잔 다르크가 등장하기 전 프랑스군이 거둔 중요한 승리 중 하나로, 프랑스의 사기를 크게 끌어올렸다.

배경

1420년대 중반,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프랑스 북부와 중부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헨리 5세 사후 베드퍼드 공작 존이 잉글랜드 점령지 총독으로서 효율적으로 프랑스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오를레앙 공방전(1428-1429) 이전에 잉글랜드는 루아르 강 유역의 중요한 도시들을 점령하려 시도했으며, 파리 남동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몽타르지는 잉글랜드군에게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몽타르지는 수로와 해자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공방전의 전개

1427년 여름, 잉글랜드군 사령관들은 몽타르지 성을 포위하고 공성 작전을 시작했다. 당시 잉글랜드군은 비교적 잘 훈련되고 경험이 풍부했으나, 몽타르지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포위와 공격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 도팽(후일 샤를 7세)은 몽타르지가 함락될 경우 루아르 강 이남의 잔여 영토 방어선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여 구원군 파견을 결정했다. 이 구원군은 장 드 뒤누아(오를레앙의 사생아), 라 이르(에티엔 드 비뇰), 포통 드 상트라이유 등 프랑스군 내에서 명망 높고 경험 많은 지휘관들이 이끌었다. 구원군은 약 1,500~2,000명 규모로 추정된다.

전투

1427년 7월 중순, 프랑스 구원군은 몽타르지에 접근하여 잉글랜드 포위군을 기습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몽타르지 주변의 수로와 습지를 활용하여 잉글랜드 진영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프랑스군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으며, 특히 보병과 궁수들이 수로를 건너거나 얕은 물을 헤치고 잉글랜드 포위망 일부를 급습했다.

잉글랜드군은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과 복잡한 지형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프랑스군은 잉글랜드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포위망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잉글랜드군은 더 이상 공방전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퇴각했다.

결과 및 의의

몽타르지 공방전은 프랑스군의 명확한 승리로 끝났다. 잉글랜드군은 상당한 손실을 입고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이 승리는 잔 다르크가 등장하기 직전의 프랑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오랫동안 패배를 거듭하며 사기가 저하되어 있던 프랑스군은 이 승리를 통해 잉글랜드군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는 이후 오를레앙 해방과 샤를 7세의 랭스 대관식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반격에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이 전투는 장 드 뒤누아나 라 이르와 같은 프랑스 지휘관들의 역량을 보여주었으며, 이들은 이후 잔 다르크와 함께 활약하게 된다. 몽타르지는 끝까지 잉글랜드에게 함락되지 않은 중요한 요새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