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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나의 마리아

모데나의 마리아 (Maria of Modena, 전체 이름: 마리아 베아트리체 안나 마르게리타 이사벨라 데스테, Maria Beatrice Anna Margherita Isabella d'Este, 1658년 10월 5일 ~ 1718년 5월 7일)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비이자 가톨릭 신자였다. 그녀는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7세)의 두 번째 부인이다.

어린 시절 마리아는 모데나 공국의 공작 알폰소 4세 데스테와 로마 귀족 라우라 마르티노치의 딸로 태어났다. 모데나에서 성장했으며, 처음에는 수녀가 될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잉글랜드의 제임스, 당시 요크 공작과의 결혼이 추진되었다.

결혼 1673년 9월 대리인을 통한 결혼식을 올린 후, 그해 11월 잉글랜드에 도착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제임스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제임스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메리, 앤)이 있었으나, 성공회 신자였던 이들과 달리 마리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녀의 가톨릭 신앙은 잉글랜드의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제임스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배제법 파동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요크 공작 부인 시절 결혼 후 마리아는 요크 공작 부인으로서 잉글랜드 궁정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곧 적응하며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대부분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후계자 문제가 지속되었다.

왕비 시절 1685년 제임스가 왕위에 오르자 마리아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제임스의 통치 기간 동안 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가톨릭 신자로서 제임스의 종교 관용 정책을 지지했다. 1688년,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 아들의 탄생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개신교 신자 메리 공주를 밀어내게 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아기가 왕실의 적자가 아니라 바꿔치기되었다는 소문("warming pan baby" 루머)이 퍼지면서 제임스 2세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다.

망명 생활 아들의 탄생 논란과 제임스 2세의 전제적인 통치, 가톨릭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1688년 명예혁명이 발발했다. 제임스 2세는 폐위되고, 마리아는 어린 아들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이들을 환대하고 파리 근교 생제르맹앙레 성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망명 생활을 하며 잉글랜드 왕위 복귀를 위한 자코바이트 운동을 지원했다.

말년과 사망 1701년 제임스 2세가 사망한 후, 마리아는 과부로서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의 왕위 계승을 지원하는 데 힘썼다. 그녀는 자코바이트 망명 공동체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아들의 명분과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마리아는 1718년 생제르맹앙레 성에서 사망했으며, 생제르맹앙레 교회의 영국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평가 모데나의 마리아는 독실한 신앙심, 남편과 자녀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삶은 17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종교 및 정치적 혼란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명예혁명과 자코바이트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