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전투
마다가스카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5월 5일부터 11월 8일까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벌어진 연합군과 비시 프랑스군 간의 군사 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연합군이 비시 프랑스군이 통치하던 이 섬을 점령하여 추축국, 특히 일본 제국 해군이 마다가스카르의 항구를 기지로 사용하는 것을 막고 아프리카 남단 주변의 연합군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되었습니다.
배경
1941년 말 진주만 공격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해군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면서, 연합군은 마다가스카르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중요한 연합군 보급선인 '케이프 항로'에 인접해 있었으며, 특히 북단의 디에고수아레즈(현재의 안치라나나)와 같은 깊은 항구는 잠수함이나 수상함 기지로 사용될 경우 연합군 해상 교통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는 독일에 협력적인 비시 프랑스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연합군은 비시 프랑스가 일본의 압력에 굴복하여 항구를 제공하거나 섬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선제적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점령하여 이러한 위협을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전 경과
작전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아이언클래드 작전(Operation Ironclad)은 마다가스카르 북단의 핵심 항구인 디에고수아레즈를 점령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942년 5월 5일, 영국군은 디에고수아레즈 인근에 상륙하여 비시 프랑스군의 저항을 제압하고 5월 7일에 항구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디에고수아레즈 점령만으로는 섬 전체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비시 프랑스군은 섬 남부로 퇴각하여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섬 전역을 장악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영국군, 남아프리카 연방군, 동아프리카 부대로 구성된 연합군은 9월부터 육상과 해상으로 진격하여 주요 도시와 교통로를 점령해 나갔습니다. 비시 프랑스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벌였으나 연합군의 병력과 기동력에 밀려 점차 고립되었습니다.
결과
결국 비시 프랑스군 총독 아르망 아네는 1942년 11월 5일에 항복 문서에 서명했으며, 공식적인 적대 행위는 11월 8일까지 종료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전역은 연합군의 통제 하에 놓였고, 이후 자유 프랑스 군정 하에 관리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연합군은 추축국이 마다가스카르를 인도양 작전 기지로 사용하는 위협을 제거하고 핵심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비시 프랑스 세력으로부터 연합군이 영토를 확보한 중요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