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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노부카츠

武田勝頼 (다케다 가쓰요리)는 일본 센고쿠 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가이(甲斐)를 본거지로 한 다케다 가문의 제20대 당주이다.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다이묘 중 한 명인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신겐 사후 가독(家督)을 이어 다케다 가문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다케다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하게 된다.

생애

다케다 가쓰요리는 다케다 신겐의 측실인 스와 고료닌(諏訪御料人)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신겐의 적자가 아니었기에 가독 상속 서열이 높지 않았다. 신겐의 적자인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가 모반 혐의로 폐적된 후, 차남과 삼남이 일찍 사망하거나 출가하면서 사실상 후계자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는 1573년 신겐이 오다 노부나가 공격 도중 병사하자 비밀리에 가독을 상속받았다.

다케다 가문 상속

신겐은 임종을 앞두고 가쓰요리에게 자신의 죽음을 3년간 비밀로 하고 내실을 다질 것을 유언했다고 전해진다. 가쓰요리는 신겐의 죽음을 숨기면서 다케다 가문의 당주가 되었으나, 그의 리더십과 전략에 대해서는 가신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는 그의 젊은 패기와 용맹함을 높이 평가했지만, 다른 일부는 아버지 신겐의 깊은 지략에 미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주요 활동

가쓰요리는 당주가 된 후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결을 계속했다. 초기에는 미카와(三河)의 다카텐진 성(高天神城)을 탈환하는 등 군사적인 성공을 거두며 아버지 못지않은 용맹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패배이자 다케다 가문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1575년의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이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조총 부대에 맞서 다케다 가문의 자랑이었던 기마대를 무리하게 돌격시키는 전략을 감행했다가 참패하고, 수많은 유능한 가신과 정예 병력을 잃었다. 이 패배로 다케다 가문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더 이상 오다-도쿠가와 연합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되었다.

몰락과 최후

나가시노 전투 이후 다케다 가문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가문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고, 가쓰요리는 영토를 계속 잃어갔다. 가신들의 이탈이 이어졌으며, 결국 1582년 텐모쿠잔 전투(天目山の戦い)에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게 포위당했다. 마지막까지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했고, 결국 처자식과 함께 자결하며 멸망한 다케다 가문의 최후를 장식했다. 이로써 신겐 시대에 전국에 위세를 떨쳤던 다케다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평가

다케다 가쓰요리는 용맹하고 전투 자체에는 능했지만, 아버지 신겐의 노련한 전략과 정치력, 그리고 가신들을 통솔하는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나가시노 전투에서의 무리한 판단은 그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로부터 이미 기울기 시작한 가문을 물려받았고, 오다 노부나가라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맞서 싸워야 했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