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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 (삼국지 가후전)

가후 (賈詡, 147년 ~ 224년)는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위나라 초까지 활약한 전략가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문화(文和)이며, 량주 무위군 고장현(姑臧縣) 사람이다. 냉철하고 뛰어난 지략으로 여러 차례 주군을 위기에서 구하고, 조조가 위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생애

젊은 시절에는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염충(閻忠)은 그를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에 비견하며 높이 평가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낭(郎)이 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한 말, 동탁(董卓)이 정권을 장악하자 가후는 그의 휘하에서 일하게 되었다. 동탁 사후, 왕윤(王允)과 여포(呂布)가 정권을 잡고 동탁의 잔당들을 숙청하려 하자, 가후는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에게 장안(長安)을 공격하여 정권을 탈취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당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자신과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계책을 받아들여 장안을 함락시키고 왕윤을 죽였으며, 이후 조정을 장악하여 혼란을 야기했다.

이각과 곽사의 내분이 심화되자 가후는 그들을 떠나 완(宛)에 있던 장수(張繡)에게 의탁했다. 장수는 조조(曹操)와의 전투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가후의 계책으로 조조를 격파하기도 했다. 이후 가후는 장수에게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했고, 장수는 이를 받아들여 조조에게 귀순했다.

조조는 가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중용했다. 가후는 조조의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도 신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조비(曹丕)가 후계자로 책봉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위나라 건국 후에는 태위(太尉)에 임명되었으며, 수많은 공적을 세우고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평가

가후는 뛰어난 지략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헤쳐나간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상황 판단 능력과 계책 수립에 능했으며,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군의 이익을 고려한 전략을 제시했다. 다만, 동탁의 잔당을 옹립하여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진수(陳壽)는 그를 "기변에 밝았으나, 독단적이고 신중함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