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아 술라
폼페이아 술라 (라틴어: Pompeia Sulla, 기원전 95년경 출생 추정)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여성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그녀는 강력한 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손녀이다. 그녀는 기원전 62년 보나 데아(Bona Dea) 축제 스캔들에 연루되어 카이사르와 이혼했다.
생애 및 가족
폼페이아는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와 코르넬리아 술라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는 기원전 88년의 집정관이었던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의 아들이며, 어머니 코르넬리아는 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딸이었다. 따라서 폼페이아는 술라의 외손녀가 된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술라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결혼 및 이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67년에 이전 부인 코르넬리아 킨나를 잃은 후, 기원전 67년 또는 66년에 폼페이아 술라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카이사르에게 술라 가문과의 연결을 제공했으나, 이는 정치적 동맹이라기보다는 그의 경력 초기에 이루어진 개인적인 결혼으로 보인다.
기원전 62년 12월, 로마에서는 여성들만이 참여하는 비밀스러운 종교 의식인 보나 데아 축제가 열렸다. 그 해 축제는 최고 사제(폰티펙스 막시무스)였던 카이사르의 집에서 폼페이아가 주관했다. 그런데 이 축제에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라는 남성이 여장하고 잠입했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로마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클로디우스는 신성 모독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는 폼페이아와 연인 관계였으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잠입했다고 의심받았다. 카이사르는 증인으로 소환되었을 때, 클로디우스가 유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증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아와 이혼했다. 카이사르는 이 이혼에 대해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받을 여지가 없어야 한다"(Caesaris uxorem oportet suspicionibus carere)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그녀가 실제로 잘못을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최고 지도자의 부인으로서 어떠한 스캔들에도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이혼 이후
폼페이아가 카이사르와 이혼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로마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그녀가 재혼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폼페이아 술라는 주로 보나 데아 스캔들과 카이사르의 유명한 이혼 사유 발언으로 역사에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