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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분할

폴란드 분할 (폴란드어: Rozbiory Polski)은 18세기 후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가 주변 강대국인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분할 및 합병된 사건을 일컫는다. 1772년의 제1차 분할, 1793년의 제2차 분할, 그리고 1795년의 제3차 분할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결국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배경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선거 왕정 체제의 불안정성, 귀족들의 특권 남용, 그리고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으로 인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특히 자유선거로 왕이 선출되는 제도는 외세의 개입을 용이하게 했으며, '자유거부권(Liberum Veto)'으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권력은 중앙 정부의 효율적인 통치를 방해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내부의 혼란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다.

분할 과정

  • 제1차 분할 (1772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영토의 일부를 각각 차지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 동부 지역을, 프로이센은 포모제와 일부 폴란드 지역을, 오스트리아는 갈리치아 지역을 획득했다.

  • 제2차 분할 (1793년):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폴란드 영토를 더욱 넓게 분할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을, 프로이센은 그단스크 (단치히)와 포즈난 (포젠)을 포함한 영토를 차지했다.

  • 제3차 분할 (1795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 잔여 영토를 완전히 분할하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쿠를란트, 볼히니아를, 프로이센은 마조비아와 바르샤바를, 오스트리아는 소폴란드 지역을 획득했다.

결과 및 영향

폴란드 분할은 폴란드 민족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폴란드 독립 운동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폴란드인들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바르샤바 공국을 건설하거나, 11월 봉기 (1830년), 1월 봉기 (1863년) 등 끊임없이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폴란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독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폴란드 분할은 또한 유럽의 세력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동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판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