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드 발루아
카트린 드 발루아(Catherine of Valois, 1401년 10월 27일 ~ 1437년 1월 3일)는 프랑스의 공주이자 잉글랜드의 왕비이다.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와 이저보 드 바이에른의 딸로 태어났으며,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의 왕비이자 헨리 6세의 어머니이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오언 튜더와의 관계는 튜더 왕조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애
카트린은 140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프랑스는 백년전쟁과 아버지 샤를 6세의 정신병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녀의 결혼은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으며,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1420년,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트루아 조약의 일환으로, 카트린은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와 결혼했다. 이 조약은 헨리 5세를 프랑스의 섭정 및 왕위 계승자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카트린과의 결혼은 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고, 1421년 12월에 아들인 헨리 6세를 낳았다.
1422년, 헨리 5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어린 아들 헨리 6세가 왕위를 계승했고, 카트린은 왕대비가 되었다. 그녀는 어린 왕의 섭정단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헨리 5세의 죽음 이후, 카트린은 웨일스 출신의 시종인 오언 튜더(Owen Tudor)와 관계를 맺었으며,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이 관계에서 그녀는 에드먼드 튜더(Edmund Tudor), 재스퍼 튜더(Jasper Tudor) 등 여러 자녀를 두었다. 왕대비가 일반 귀족과 결혼하거나 관계를 맺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1428년 의회는 왕대비의 재혼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녀의 아들 에드먼드 튜더는 나중에 헨리 7세의 아버지가 되어 튜더 왕조의 기초를 마련했다.
카트린 드 발루아는 1437년 1월 3일 버몬지 수도원에서 사망했다.
의의
카트린은 비록 짧은 기간 잉글랜드의 왕비였지만, 잉글랜드 국왕의 어머니이자 튜더 왕조를 시작한 헨리 7세의 할머니로서 잉글랜드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