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만주 청산리 일대에서 김좌진, 이범석 등이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이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 작전에 맞서, 대한독립군은 여러 독립군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배경
1919년 3.1 운동 이후 무장 독립 투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군 기지가 건설되었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고취시켰으나, 일본군은 이를 계기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한독립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청산리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결전을 준비하였다.
전개 과정
청산리 전투는 백운평, 완루구, 천수평, 어랑촌 등 청산리 일대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을 주축으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안무 장군의 국민회군 등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일본군에 맞섰다. 독립군은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매복 작전과 기습 공격을 통해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백운평 전투와 완루구 전투에서의 승리는 전투의 흐름을 독립군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결과 및 영향
청산리 전투에서 대한독립군은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며 승리하였으나, 일본군의 대규모 추격과 간도 참변 등으로 인해 독립군은 근거지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청산리 전투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대승은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청산리 전투는 이후 독립운동의 방향을 무장 투쟁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