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년 4월 22일~)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작가, 교수이다. 현대 정치철학, 법철학, 역사, 종교, 미학, 언어 등 폭넓은 분야에서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하며 동시대 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그는 주권(sovereignty),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 벌거벗은 생명(nuda vita), 호모 사케르(Homo Sacer), 생명정치(biopolitics), 장치(dispositif)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정치 및 법 질서의 근본적인 성격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생애와 사상적 배경
로마에서 태어나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직접 참여하여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발터 벤야민의 아카이브 연구에 몰두하며 그의 사유를 독자적으로 계승 및 발전시켰고,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론, 한나 아렌트의 정치 이론, 칼 슈미트의 법 이론 등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신의 사유를 구축했다.
주요 사상
아감벤 사상의 핵심은 서구의 정치 및 법 질서가 생명을 어떻게 포획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한 분석에 있다. 주요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 호모 사케르와 벌거벗은 생명: 로마법에서 '호모 사케르'는 죽일 수는 있지만 제물로 바칠 수는 없는, 즉 어떤 제의적 질서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아감벤은 이 개념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여, 법적,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오로지 생물학적인 사실로서만 존재하는 '벌거벗은 생명'을 설명한다. 그는 현대 주권 권력이 이러한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고 본다.
- 예외상태: 아감벤은 법이 중지되는 '예외상태'가 현대 주권 권력 작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주권은 법을 정지시킴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며, 예외상태를 통해 법의 영역과 법이 적용되지 않는 생명의 영역(벌거벗은 생명)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통제한다. 예외상태는 더 이상 일시적인 비상 상황이 아니라, 상시적인 통치 기제가 되었다고 본다.
- 생명정치: 미셸 푸코의 개념을 계승 발전시켜, 현대 정치가 단순히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인구 전체의 생명과 신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생명정치'의 성격을 갖는다고 분석한다. 아감벤은 이러한 생명정치가 주권 권력과 분리될 수 없으며,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과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 장치(Dispositif): 푸코의 개념을 확장하여, 다양한 이질적인 요소들(담론, 제도, 법, 건축물, 과학적 지식, 철학적 개념 등)의 총합으로서, 인간의 행동, 사고, 신체 등을 포획하고 조작하여 특정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기제 전반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수많은 '장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장치들이 벌거벗은 생명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 삶의 형식(Forma-di-vita): 벌거벗은 생명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삶의 방식(form)과 삶 자체(life)가 분리되지 않는 형태의 삶을 의미한다. 그는 벌거벗은 생명을 포획하는 현대 생명정치에 저항하고 벗어나기 위한 가능성을 이러한 '삶의 형식'에서 찾으려 시도한다.
주요 저서
- 《도래할 공동체》(La comunità che viene, 1990)
-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Homo Sacer: Il potere sovrano e la nuda vita, 1995)
- 《잠재태》(Potenza del pensiero, 2000)
- 《예외상태》(Stato di eccezione, 2003)
- 《아우슈비츠의 잔여》(Quel che resta di Auschwitz, 1998)
- 《장치란 무엇인가?》(Che cos'è un dispositivo?, 2006)
- 《신체들의 사용》(L'uso dei corpi, 2014) - 《호모 사케르》 시리즈의 최종권
아감벤의 사유는 난해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현대 정치, 법, 윤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하며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