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나리노부
시마즈 나리노부 (島津 斉彬, しまづ なりあきら, 1809년 4월 28일 ~ 1858년 12월 5일)는 에도 시대 후기의 다이묘이며, 사쓰마 번의 11대 번주이다. 뛰어난 식견과 개혁 정신으로 번정 개혁을 추진하여 사쓰마 번을 일본 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번으로 만들었으며, 막부 말기의 정치적 격동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분카 6년(1809년)에 9대 번주 시마즈 나리오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영민함과 학구열을 보였으며, 아버지 나리오키와는 달리 서양 문물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졌다. 덴포 12년(1841년)에 가독을 이어받아 번주가 되었다.
번정 개혁
나리노부는 번주 취임 직후부터 적극적인 번정 개혁을 추진했다. 서양 기술 도입을 위해 쇼세이칸(集成館)을 건설하여 제철, 방적, 조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 개발을 장려했다. 또한 군사력 강화에도 힘써 서양식 무기 도입 및 훈련을 실시했으며,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사쓰마 번은 막부 말기 일본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번으로 성장했다.
정치 활동
나리노부는 막부 말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는 조정과 연계하여 막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공무합체 운동을 지지했으며, 히토쓰바시 요시노부(후의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쇼군 후계자로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안세이 대옥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세이 5년(1858년)에 급사했다.
평가
시마즈 나리노부는 뛰어난 지도력과 개혁 정신으로 사쓰마 번을 근대화의 길로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업적은 메이지 유신의 토대가 되었으며,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