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다츠마
사카모토 다츠마 (坂本龍馬, さかもと りょうま, 1836년 1월 23일 ~ 1867년 12월 10일)는 일본 에도 시대 말기(막말)의 도사 번(현재의 고치현) 출신 사무라이, 정치인, 사업가이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름인 '龍馬'는 일반적으로 '료마(りょうま)'로 읽지만, '다츠마(たつま)'로 읽히기도 한다.
생애
도사 번의 하급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사카모토 료마는 어릴 때부터 검술을 배웠으며, 에도로 상경하여 검술 훈련을 받으며 당대의 여러 사상가들과 교류하고 서양의 문물 및 일본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한 인식을 키웠다.
초기에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침)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일본의 근대화와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막부의 해군 총재였던 가쓰 가이슈(勝海舟)에게서 배우며 개국론과 해군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막부 체제를 개혁하거나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에도 막부에 대항하던 조슈 번(長州藩)과 사쓰마 번(薩摩藩) 사이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비밀 군사 동맹인 '삿초 동맹(薩長同盟)'을 성사시킨 것이다. 수십 년간 적대 관계였던 두 번을 동맹으로 묶음으로써 막부 타도를 위한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막부 타도 후 수립될 신정부의 기본 방향을 담은 '선중팔책(船中八策)'을 제시하며 근대 일본의 국가 체제 구상에 기여했다.
정치 활동 외에도 일본 최초의 근대적 상사이자 사설 해군인 '가이엔타이(海援隊)'를 조직하여 무역과 운수업을 영위하며 상업과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867년 12월 10일, 교토의 오미야(近江屋) 여관에서 동지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향년 31세. 그의 암살범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러 설이 존재한다.
평가 및 유산
사카모토 료마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상가, 행동가, 사업가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상황 속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변화를 이끌어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존경받는 역사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삶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