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쇼 소년사절단
덴쇼 소년사절단 (天正遣欧少年使節, てんしょうけんおうしょうねんしせつ)은 1582년부터 1590년까지 일본 규슈 지방의 기리시탄 다이묘들(오무라 스미타다, 오토모 소린, 아리마 하루노부)이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및 유럽 각국에 파견한 소년 사절단이다. 예수회 선교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본에서 유럽으로 파견된 최초의 공식적인 사절단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배경 및 목적
16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선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일부 다이묘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기리시탄 다이묘가 되었다. 이들은 교황과 유럽 군주들에게 직접 인사하고, 유럽의 문물을 접하며,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사절단 파견을 결정했다. 예수회 측은 이 사절단을 통해 유럽에 일본의 존재와 기독교의 전래 상황을 알리고 후원을 얻고자 했다.
구성원
사절단은 주로 기리시탄 다이묘 가문의 자제나 관계자들로 구성되었다. 정식 대표는 다음과 같은 네 명의 소년이었다.
- 이토 만쇼(伊東マンショ): 오토모 소린의 인척
- 치지와 미구엘(千々石ミゲル): 오무라 스미타다의 조카이자 아리마 하루노부의 조카
- 하라 마르티노(原マルチノ): 아리마 하루노부의 인척
- 나카우라 줄리앙(中浦ジュリアン): 오무라 스미타다의 인척
이들을 인솔하고 교육을 담당한 것은 디에고 데 메스키타(Diego de Mesquita) 신부였으며, 기획자인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신부도 출발 후 일부 구간 동행했다.
여정
사절단은 1582년 2월 20일(음력) 나가사키 항을 출발했다. 필리핀 마닐라, 마카오, 말라카, 코친, 고아 등 아시아 각지를 거쳐 인도양을 건넜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을 횡단하여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한 것은 1584년 8월이었다. 이후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를 방문하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이탈리아 각 공국의 군주들, 그리고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이후 교황 식스토 5세에게도 알현)를 만났다.
유럽에서의 환대
사절단은 유럽 각지에서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이들은 동방의 신비로운 나라에서 온 귀한 손님으로 여겨졌으며, 각 도시에서는 성대한 연회와 축제가 열렸다. 이들은 유럽의 궁전과 교회, 학교 등을 방문하며 당시 유럽 문물의 발전상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라틴어, 음악, 회화 등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들의 존재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 그리고 동양에서의 기독교 선교 상황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귀환과 영향
긴 여정을 마치고 사절단은 1590년 7월 21일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그러나 이들이 떠난 사이 일본의 상황은 크게 변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있었으며, 1587년에는 기리시탄 추방령(바테렌 추방령)을 내려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덴쇼 소년사절단의 파견은 일본과 유럽 간의 최초의 공식적인 외교 및 문화 교류 사례로서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유럽의 인쇄술, 천문학, 지리 등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일본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으며, 특히 구텐베르크 인쇄술을 개량한 서양식 활판 인쇄술을 일본에 들여오는 데 기여했다. 이들의 경험과 보고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에게 유럽 문명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넓혀주었다. 귀환 후 사절단 구성원들은 예수회에 입회하거나 활동했으나,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 금지령 아래에서 박해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