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겐부르크 백작
토겐부르크 백작(독일어: Graf von Toggenburg)은 스위스 북동부의 토겐부르크(Toggenburg, 현재 장크트갈렌주와 취리히주 일부 지역)를 지배했던 중세의 귀족 가문 또는 그 작위를 일컫는다. 이 가문은 11세기경부터 등장하여 15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의 유력한 영주 가문으로 활동했다.
역사
토겐부르크 가문은 11세기 초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며, 원래는 아펜첼(Appenzell) 지역의 소규모 봉건 영주였다. 가문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토겐부르크 계곡과 그 주변 지역에 걸친 상당한 영지를 확보했다. 백작 작위는 12세기경에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토겐부르크 백작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틀 안에서 자치적인 권력을 행사했으며, 주변의 합스부르크 가문, 장크트갈렌 수도원, 그리고 신흥 강자인 스위스 동맹(Eidgenossenschaft)과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때로는 동맹과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영지를 유지하고 확장했다.
가문의 가장 강력했던 시기는 마지막 백작인 프리드리히 7세(Friedrich VII, 재위 1387-1436) 때였다. 그는 영리한 외교와 혼인을 통해 토겐부르크 영지를 최대로 확장했으며, 취리히 등 중요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다.
단절과 그 여파
1436년 프리드리히 7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토겐부르크 백작 가문의 남계가 단절되었다. 그의 광대한 영지를 누가 상속할 것인지를 두고 분쟁이 발생했으며, 이는 합스부르크 가문, 취리히 공화국, 그리고 스위스 동맹의 다른 주(州)들 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었다.
이 상속 분쟁은 결국 구취리히 전쟁(Alter Zürichkrieg, 1440-1450)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전쟁 이후 토겐부르크의 영지는 여러 세력에게 분할되었고, 토겐부르크 백작이라는 작위와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토겐부르크 지역은 이후 장크트갈렌 수도원과 스위스 동맹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영지
토겐부르크 백작의 영지는 주로 현재의 스위스 장크트갈렌주에 해당하는 토겐부르크 계곡 일대와 그 주변 지역에 걸쳐 있었다. 전성기에는 취리히호 주변과 라퍼스빌(Rapperswil) 등 중요한 거점들도 포함했다.
중요성
토겐부르크 백작 가문의 단절은 중세 스위스 지역의 세력 판도를 크게 변화시킨 사건이었으며, 특히 구취리히 전쟁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스위스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영지는 이후 스위스 동맹의 확장에 기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