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슈타트 반란
크론슈타트 반란은 1921년 3월 초,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페트로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에서 일어난 반 소비에트 봉기이다. 반란은 볼셰비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 특히 전시 공산주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사건이었다.
배경:
반란의 주요 원인은 러시아 내전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과 기근이었다. 전시 공산주의 정책은 농민들에게 곡물을 강제로 징발하여 도시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이는 농민들의 불만을 야기했고 농업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또한, 볼셰비키 정부는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불만이 고조되었다.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는 내전 기간 동안 볼셰비키를 지지하며 혁명 수호에 앞장섰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점차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개:
1921년 2월 말,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발생하자 크론슈타트 수병들은 이를 지지하며 정부에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새로운 소비에트 선거 실시, 언론과 집회의 자유 보장, 농민에 대한 곡물 징발 중단, 정치범 석방 등이었다. 볼셰비키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고 크론슈타트 수병들을 "반혁명 분자"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을 결정했다. 3월 7일, 트로츠키가 이끄는 붉은 군대는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3월 18일, 붉은 군대는 크론슈타트를 점령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결과 및 영향:
크론슈타트 반란은 볼셰비키 정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혁명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수병들의 반란은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레닌은 크론슈타트 반란을 계기로 전시 공산주의 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 (NEP)을 도입하여 농민들에게 시장 경제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고 경제 회복을 도모했다. 또한, 볼셰비키 정부는 반란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강경한 태도로 인해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정치적 억압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볼셰비키 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