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샤리아티
알리 샤리아티 (페르시아어: علی شریعتی)는 이란의 저명한 사회학자, 철학자, 혁명가입니다. 1933년 이란 북동부 호라산주 마지난에서 태어나 1977년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20세기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으로, 특히 1979년 이란 혁명에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샤리아티는 전통적인 이슬람 사상과 서구의 현대 철학, 사회학(특히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프란츠 파농 등의 반식민주의 사상)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는 이슬람을 단순한 의례나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넘어선 사회 개혁과 정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인 이념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붉은 시아'(혁명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시아 이슬람)와 '검은 시아'(권력에 순응적이고 미신에 기반한 시아 이슬람)의 대조입니다. 그는 진정한 이슬람은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정신을 회복해야 하며, 이는 사회 불의와 압제에 맞서 싸우는 '지하드' (성전)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슬람의 '타우히드'(하나님의 유일성) 개념을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여, 이는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평등과 단일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연결했습니다.
샤리아티는 이란의 지식인('로샨페크르')들에게 사회 변혁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으며, 당시 샤 왕조의 세속주의 정책과 전통적인 성직자 계층의 무기력을 동시에 비판했습니다. 그는 테헤란의 후세이니에 에르샤드(Hosseiniyeh Ershad)와 같은 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연하며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그 급진적인 사상 때문에 샤 왕조의 비밀경찰 사바크(SAVAK)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시당하고 여러 차례 체포 및 투옥되었습니다.
1977년 석방된 후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망명 직후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로 의문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샤 왕조에 의한 암살로 널리 의심받고 있습니다.
샤리아티의 사상은 이란 혁명의 사상적 토대 중 하나를 제공했으며, 특히 혁명 전후의 젊은 세대와 혁명 세력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까지 이란 사회와 사상계에서 그의 유산과 사상은 활발히 논의되고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