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론
소론(少論)은 조선 숙종 때 서인(西人)에서 분리되어 나온 붕당이다. 서인에서 노론(老論)과 함께 나뉘었으며, 주로 남인(南人)에 대한 태도나 특정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노론과 대립했다.
역사
소론의 발생은 1680년(숙종 6년) 경신환국 이후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깊다.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대거 실각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나, 서인 내부에서 남인 잔당의 처리 문제와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특히 송시열의 학문적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그와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던 윤증(尹拯)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송시열과 그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다. 이때 송시열을 노장(老匠)으로 높이 받드는 세력을 노론, 그에 비해 비교적 젊거나 새로운 인물들이 많았던 세력을 소론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주요 인물
소론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윤증, 박세채, 최석정 등이 있다.
정치 활동
소론은 노론과 함께 숙종 이후 조선 후기 정치의 주요 세력으로 활동했다. 숙종대의 환국을 거치며 남인, 노론과 번갈아 정국 주도권을 잡기도 했다. 특히 숙종 말년과 경종 연간에는 소론이 정국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나,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다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영조 대에 발생한 이인좌의 난(1728년)에 소론 인사들이 일부 연루되면서 노론의 공격을 받고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에도 소론은 존재했으나, 조선 후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노론이 정치적 우위를 차지했다.
특징
소론은 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실용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는 평가도 있으나, 붕당 간의 차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했으며, 주로 정치적 역학 관계와 특정 사안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