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도산
사이토 도산(일본어: 斎藤 道三, 1494년? ~ 1556년 5월 28일?)은 센고쿠 시대의 무장이다. 미노 국의 슈고다이묘(守護代大名)로, 하극상을 통해 미노를 지배했다.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본래 승려, 기름 장수, 사무라이 등 다양한 신분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생애
도산의 초기 생애는 불분명하며, 다양한 출신 설화가 존재한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로는 원래 교토의 묘카쿠지(妙覚寺)라는 절의 승려였다가 환속하여 기름 장사를 하였으며, 뛰어난 상술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이후 나가이 나가히로(長井長弘)의 가신으로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산은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을 바탕으로 주군인 나가이 나가히로를 살해하고, 그의 지위를 찬탈했다. 이후 미노 슈고(守護) 도키 요리요시(土岐頼芸)를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하고, 점차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도키 가문의 내분을 이용하여 도키 요리요시를 추방하고, 미노 국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미노를 지배하게 된 도산은 주변 세력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데 힘썼다. 특히 오와리 국의 오다 노부나가와 자신의 딸 노히메를 결혼시켜 동맹을 맺었다. 이 동맹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최후
도산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아들 사이토 요시타쓰(斎藤義龍)가 아버지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1556년, 나가라가와 전투(長良川の戦い)에서 도산은 요시타쓰의 군세에 패배하여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센고쿠 시대의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평가
사이토 도산은 하극상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립한 인물로,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통해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면서, 그의 삶은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여겨진다.
관련 인물
- 오다 노부나가
- 노히메
- 사이토 요시타쓰
- 도키 요리요시
- 나가이 나가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