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야마 천황
가메야마 천황 (亀山天皇, 1249년 7월 9일 ~ 1305년 10월 21일)은 일본의 제90대 천황 (재위: 1259년 1월 14일 ~ 1274년 3월 6일)이다. 휘(諱)는 쓰네히토 (恒仁)이다. 가마쿠라 시대의 천황으로, 고사가 천황의 7남이다.
개요 부황인 고사가 천황의 뒤를 이어 1259년에 즉위하였다. 즉위 당시 11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부황인 고사가 천황이 인세이(院政, 상황이나 법황이 출가 후에도 정치를 하는 것)를 펼쳤다. 1272년 고사가 천황이 붕어한 이후 친정을 시작하였으나, 1274년 아들인 고우다 천황에게 양위하고 자신은 인세이를 시작하였다.
인세이와 몽골 원정 가메야마 천황이 인세이를 펼치던 시기인 1274년 (분에이 11년)과 1281년 (고안 4년)에 원나라(몽골)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원정 (겐코 원정)이 있었다. 가메야마 법황 (출가 후의 호칭)은 외적의 침입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며, 신국(神國)인 일본의 위난을 불력(佛力)에 의지하여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1차 원정 시에는 이세 신궁 등에 칙사를 파견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국가의 안녕을 지키겠다는 기원문을 작성하는 등 국난 극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막부와 협력하여 국방 체제를 강화하는 데 힘썼다.
말년과 후계 문제 1298년 출가하여 법황이 되었으며, 불도에 깊이 귀의하였다. 그는 오각사(大覚寺, 다이카쿠지)와의 관계가 깊었으며, 이후 그의 계통은 남북조 시대에 다이카쿠지 왕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문화와 학문 장려에도 힘썼으며, 특히 유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가메야마 천황의 인세이 기간 동안, 부황인 고사가 천황의 뜻에 따라 형인 고후카쿠사 천황의 아들(후의 후시미 천황)과 자신의 아들(후의 고우다 천황) 사이에 후계 구도가 복잡해지면서, 이후 황통이 지묘인 왕통과 다이카쿠지 왕통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원인이 되었다.
1305년에 붕어하였다. 능은 교토시 우쿄구에 있는 가메야마릉(亀山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