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
황정견(黃庭堅, 1045년 ~ 1105년)은 북송 시대의 문인이자 서예가, 시인이다. 호는 낙재(遯齋), 산곡도인(山谷道人) 등으로 알려져 있다. 강서 금릉(현재의 장시) 출신이다.
생애
황정견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그는 벼슬길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했으나, 강직한 성격 때문에 여러 차례 좌천되기도 했다. 그의 관직 생활은 정치적 격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그의 시와 글에는 이러한 경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그는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업적
황정견은 시, 서예, 그림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시는 독특한 스타일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명하며, 당시 문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시는 난해한 면도 있지만, 독창적인 표현과 예술적 경지가 높이 평가된다. "산곡체(山谷體)"라 불리는 그의 시풍은 후대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서예가로서 황정견은 "황체(黃體)"라 불리는 독특한 서체를 창시했다. 그의 서체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필획과 독특한 구도로 유명하며, 송대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서예 작품은 현재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그림 또한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와 서예에 비해 작품 수가 적어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바가 적다.
사후
황정견은 110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시와 서예는 널리 알려져 후대의 문인과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도 그는 중국 문학과 예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