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다몬 의거
사쿠라다몬 의거 (桜田門外ノ変)는 1860년 3월 24일 (만엔 원년 3월 3일) 에도 시대 말기, 미토 번 낭인 및 일부 사쓰마 번 낭인들이 에도 성 사쿠라다 문 밖에서 막부의 다이로 (大老, 최고 직책) 이이 나오스케 (井伊直弼)를 암살한 사건이다.
배경
이 사건은 안세이 대옥 (安政の大獄)으로 대표되는 이이 나오스케의 강압적인 정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다. 이이 나오스케는 쇼군 후계자 문제에서 도쿠가와 요시토미 (徳川慶福, 후일의 도쿠가와 이에모치)를 지지하며 반대파를 탄압하고,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 과정에서 천황의 칙허를 받지 않아 조정과 존왕양이파의 강한 반발을 샀다. 특히 미토 번은 이이 나오스케의 정적이었던 도쿠가와 나리아키 (徳川斉昭)의 근거지였기에, 그의 탄압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경과
미토 번 낭인 17명과 사쓰마 번 낭인 1명으로 구성된 암살자들은 이이 나오스케가 등성하는 길목인 사쿠라다 문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당일은 눈이 내리는 날씨였고, 이이 나오스케의 경호는 평소보다 소홀했다. 낭인들은 이이 나오스케의 가마를 습격하여 경호 무사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결국 이이 나오스케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영향
사쿠라다몬 의거는 막부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키고, 존왕양이 운동을 더욱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막부 말기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이 나오스케의 암살은 막부의 쇠퇴를 가속화하고, 각 번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관련 인물
- 이이 나오스케 (井伊直弼): 당시 막부의 다이로
- 도쿠가와 나리아키 (徳川斉昭): 미토 번주, 이이 나오스케의 정적
- 관련 낭인들 (미토 번, 사쓰마 번 낭인)
참고 문헌
(관련 서적 및 논문 정보 - 필요시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