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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발해사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존속했던 발해국의 역사이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중심으로 건국된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성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발해사는 한국사와 중국사 모두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발해의 민족 구성, 문화적 특징, 외교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개요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힘을 합쳐 건국한 나라이다. 건국 초기에는 진국이라 불렸으나, 이후 발해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발해는 당과의 관계를 통해 문물을 수용하고, 주변 국가들과 활발한 외교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는 '일본도'라는 해상 교통로를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발해는 상경 용천부를 수도로 삼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켰으며, 이후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서경 압록부 등으로 수도를 옮기며 발전과 변화를 거듭했다.

역사

  • 건국: 698년, 고구려 유민 출신인 대조영이 건국하였다.
  • 초기: 당과의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국력을 키웠다.
  • 전성기: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반, 선왕 대에 영토를 확장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번성하였다.
  • 멸망: 926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정치

발해는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3성 6부제를 운영하며 행정 업무를 분담하였고, 주, 현을 설치하여 지방을 통치하였다. 발해의 귀족들은 고구려 유민 출신이 많았으며, 말갈족도 점차 정치에 참여하였다.

경제

발해는 농업을 기반으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또한, 수렵과 어로도 중요한 산업이었다. 대외 무역을 통해 당, 일본 등과 교류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사회

발해 사회는 귀족과 평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누렸으며, 평민들은 농업, 수공업 등에 종사하며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였다.

문화

발해 문화는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당 문화의 요소도 수용하였다. 발해의 건축, 미술, 공예 등에서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발해는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발해 문자는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논쟁점

발해사는 한국사와 중국사에서 모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발해의 민족 구성, 역사적 성격 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발해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