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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직필

동호직필(董狐直筆)은 중국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사관(史官) 동호(董狐)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을 칭송하는 고사성어이다. 권력이나 외압에 굴하지 않고 사실에 입각하여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정신을 상징하며, 후세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유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기원전 607년 진나라의 영공(靈公)이 자신의 신하인 조순(趙盾)에 의해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공은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망을 샀고, 조순은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조순의 종자인 조천(趙穿)이 영공을 살해했다.

동호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조순이 영공을 시해했다(趙盾弑其君)"라고 기록했다. 조순은 자신이 직접 살해하지 않았고, 사건 발생 당시 수도에 없었기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동호는 조순이 영공 시해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순은 영공의 측근으로서 그를 올바르게 보필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정을 막지 못했고 결국 시해 사건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천은 조순의 종자였으므로 조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기록에 대해 진나라의 대부(大夫)인 사해(士魫)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동호는 자신의 기록을 수정하지 않았다. 이후 공자(孔子)는 동호의 직필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동호는 옛날의 좋은 사관이다. 법도를 굽히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했다(董狐,古之良史也,書法不隱)"라고 칭찬했다.

의미 및 활용

동호직필은 권력이나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사 기록뿐만 아니라 언론,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오늘날에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맥락에서 자주 인용된다. 또한, 개인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며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북돋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