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후토 신사
가라후토 신사(樺太神社)는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남사할린(가라후토)의 도청 소재지였던 도요하라(豊原, 현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에 건립했던 신사이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최고 등급의 신사 중 하나인 관폐대사(官幣大社)로 지정되었으며, 가라후토 지역의 중심적인 신사이자 일본의 통치를 상징하는 시설물이었다.
역사 가라후토 신사는 1911년 남사할린의 초기 중심지였던 오도마리(大泊, 현 러시아 코르사코프)에 창건되었다. 이후 가라후토의 도청 기능이 도요하라로 이전함에 따라 1937년에 도요하라로 이전 신축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이 가라후토 통치를 강화하고 이 지역을 내지(일본 본토)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전 후 관폐대사로 승격되어 국가 신토 체제 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제신(祭神) 가라후토 신사에는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나 오쿠니누시노 미코토(大国主命) 등 국가 신토의 주요 신들과 함께, 가라후토 개척 및 통치와 관련된 신들이 합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식민지나 점령지의 주요 신사에 흔히 나타나는 형태로, 해당 지역의 일본 통치를 정당화하고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일본 본토와 연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위상과 역할 가라후토 신사는 가라후토 지역의 일본인 이주민들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제공하고, 일본의 국가 의례를 수행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한, 일본 제국의 국체(國體) 이념과 식민지 통치 정책을 상징하는 중요한 시설물로서 기능했다. 관폐대사로서 국가 예산을 지원받고 국가가 직접 제사를 관리했으며, 이는 신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준다.
해체와 현재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이 남사할린 전역을 점령하면서 가라후토에 있던 일본의 행정 및 종교 시설들은 대부분 해체되거나 파괴되었다. 가라후토 신사 또한 이때 폐지되었으며, 건물은 철거되었거나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다. 신위에 해당하는 신체(神体)는 일본 본토의 신사로 옮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래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신사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다른 건축물이 들어서거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