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교성 전투
왜교성 전투 (倭橋城戰鬪)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조명연합군이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왜교성에 주둔한 왜군을 공격한 전투이다. 조명 연합군은 왜교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왜군의 완강한 저항과 지형적 불리함, 그리고 조명 연합군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했다.
배경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왜군은 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왜교성은 그중 하나로,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둔하며 명나라 수군과의 교역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다. 조명 연합군은 왜군의 거점인 왜교성을 함락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했다.
전투 과정
1597년 9월, 명나라의 경략 양호는 조명 연합군을 이끌고 왜교성을 포위했다. 조명 연합군은 왜교성을 공격했지만, 왜교성은 험준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었고 왜군의 방어 또한 매우 견고했다. 조명 연합군은 공성 무기를 동원하여 공격을 시도했으나, 왜군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혀 큰 피해를 입었다.
전투는 10월까지 이어졌지만, 조명 연합군은 왜교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명나라 장수 간의 불화와 보급 문제 또한 전투를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양호는 왜교성 함락을 포기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결과 및 영향
왜교성 전투는 조명 연합군의 패배로 끝났다. 이 전투의 실패로 인해 조명 연합군은 남해안 일대의 왜군 거점을 쉽게 공략할 수 없게 되었고, 전세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왜교성 전투는 조명 연합군에게 왜군의 방어 능력을 파악하고, 향후 작전 계획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전투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 해전에서 승리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