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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드 메디시스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오스트리아의 요한나의 딸로 태어났다. 1600년에 앙리 4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며,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 중 장남이 훗날 루이 13세가 되었다.

1610년 앙리 4세가 암살당하자, 어린 아들 루이 13세의 섭정으로서 프랑스를 통치하게 되었다. 섭정 기간 동안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 측근인 콩치노 콩치니(Concino Concini)와 그의 아내 레오노라 도리(Leonora Dori)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권력을 맡겨 프랑스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루이 13세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권력을 유지하려 했으며, 아들 루이 13세 및 그의 새로운 측근, 특히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 추기경과 격렬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예술과 건축의 주요 후원자로, 파리에 뤽상부르 궁전(Palais du Luxembourg)을 건축하고 페테르 파울 루벤스에게 자신의 생애를 그린 대규모 연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결국 리슐리외 추기경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여러 차례 유배되거나 프랑스 밖으로 망명했으며, 말년에는 네덜란드, 영국 등을 전전하다 독일 쾰른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섭정기와 말년의 정치적 갈등은 프랑스 절대주의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