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제국기
대한 제국기 (大韓帝國期)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대한제국이 존속했던 기간인 1897년부터 1910년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추구하고 자주 독립을 지키려 했던 격동의 시기였으나,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결국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병합된 비극적인 역사를 담고 있다.
성립 배경: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삼국간섭으로 인해 러시아 등 다른 열강과의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조선의 국왕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1896년 아관파천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국내외의 환궁 요구와 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 환궁 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꾸고, '제국'으로 격상시켜 황제국임을 선포하며 대외적으로 자주 독립국임을 천명하였다.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광무'로 정했다.
주요 특징:
- 자주 독립 의지 표명: 청의 속국 관계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 국가임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황제국으로서 위상을 높이려 노력했다.
- 광무개혁: 황제를 중심으로 근대화를 추진하려 했다. 근대적인 법제, 군사, 경제,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했으나, 보수파와 개화파의 갈등 및 재정 부족, 열강의 간섭 등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주요 개혁으로는 양전 사업을 통한 지계 발급, 원수부 설치, 근대식 학교 설립, 공장 및 회사 설립 지원 등이 있었다.
- 열강의 각축: 대한제국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의 이권 침탈과 정치적 간섭에 시달렸다. 특히 러시아-일본 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 국권 피탈 과정: 일본은 러일 전쟁 승리 후 대한제국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했다. 1905년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했고, 이에 반발한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을 시도하자 1907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뒤이어 정미7조약을 통해 내정 간섭을 심화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의병 활동이 활발해졌으나 결국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역사적 의의와 평가:
대한제국기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시성이자, 근대 국민 국가로 나아가려는 시도가 좌절된 비극적인 시기이다. 자주 독립을 선포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내우외환 속에서 국력을 기르지 못하고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자주 독립 노력과 근대화 시도는 이후 독립운동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