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기진
아시카가 기진 (足利 義稙, 1466년 ~ 1523년 2월 4일)은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제10대 쇼군 (재임: 1490년 ~ 1493년, 1508년 ~ 1521년)이다. 원래 이름은 아시카가 요시타네(足利 義材)였으나, 후에 요시타네에서 요시타네(義稙)로 개명하였다.
생애
아시카가 요시미(足利 義視)의 아들로 태어났다. 간세이의 난(寛正の乱)으로 인해 아버지 요시미가 몰락하면서 유년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1490년, 제9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 義尚)가 사망하자, 하타케야마 마사나가(畠山 政長) 등의 지지를 받아 쇼군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쇼군 취임 후,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 政元)와의 대립이 심화되어 1493년 메이오 정변(明応の変)으로 쇼군 직에서 폐위되고 아시카가 요시즈미(足利 義澄)가 새로운 쇼군으로 옹립되었다.
폐위 후에는 오우치 씨(大内氏)의 도움을 받아 재기를 노렸으며, 1508년, 호소카와 마사모토 사후에 오우치 요시오키(大内 義興)와 함께 교토에 입경하여 다시 쇼군 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오우치 요시오키가 교토를 떠난 후, 다시 호소카와 씨와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1521년, 호소카와 다카쿠니(細川 高国)에게 쫓겨 아와지 섬(淡路島)으로 피신하였다. 그 후 아와지 섬에서 사망하였다.
인물 및 평가
아시카가 기진은 쇼군으로서의 권위 회복을 꾀했으나,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들의 세력이 강성했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호소카와 씨를 비롯한 유력 다이묘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그는 쇼군 직에서 폐위와 복위를 반복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