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세이 개혁
간세이 개혁(寛政の改革)은 일본 에도 막부 중기인 간세이 연간(寛政年間, 1789년 ~ 1801년)에 마쓰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가 주도한 막부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운동이다. 덴메이 대기근(天明の大飢饉) 이후의 사회 불안과 막부 재정의 악화를 타개하고 막부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배경
덴메이 대기근은 일본 전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고, 농민 봉기와 도시의 혼란을 야기했다. 막부 재정은 기근으로 인한 세수 감소와 더불어 다누마 오키쓰구(田沼意次) 시대의 상업 중시 정책으로 인한 부정부패 심화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막부는 사회 기강을 확립하고 재정을 재건하며 막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주요 내용
간세이 개혁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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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약 정책: 사치와 향락을 금지하고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여 막부 재정을 절약하고자 했다. 다이묘(大名)와 하타모토(旗本)의 소비를 억제하고, 농민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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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 확립: 유학, 특히 주자학을 장려하여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자 했다. 간세이 이학 금지령(寛政異学の禁)을 내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을 금지하고, 쇼헤이자카 학문소(昌平坂学問所)를 중심으로 주자학 교육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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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부흥: 농촌 경제를 안정시키고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간세이 개혁에서는 농촌 진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황무지를 개간하도록 장려하며, 농촌 자치 조직을 활성화했다. 간세이 개혁은 특히 농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했는데,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칠분적금미(七分積金米)'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결과와 평가
간세이 개혁은 일시적으로 막부 재정을 안정시키고 사회 기강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으나, 지나치게 엄격한 통제와 보수적인 정책으로 인해 상인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경제 발전을 저해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강압적인 개혁 방식은 다이묘들과 막부 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사다노부는 실각하게 된다. 간세이 개혁은 에도 막부의 쇠퇴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