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 래티모어
오언 래티모어 (Owen Lattimore, 1900년 7월 29일 ~ 1989년 5월 27일)는 미국의 동아시아, 특히 몽골과 중국 연구 학자이자 작가, 교육자, 그리고 정부 자문관이었다. 그의 학문적 전문성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사회와 중국의 국경 지역에 집중되었으며, 특히 몽골과 만주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 활동을 펼쳤다.
래티모어는 학문적 업적 외에도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중국 국민당 정부에 대한 지원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또한 매카시즘 시대에 공산주의 혐의로 기소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생애 및 경력
래티모어는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중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중국어와 문화를 익혔다. 1930년대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월터 하인즈 페이지 정치학 교수로 임명되어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 정부의 자문관으로 활동하며 중국 문제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제공했다. 그는 또한 헨리 월리스 부통령의 특별 사절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전후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재직했으나, 1950년대 매카시즘 시대에 공산주의 혐의로 기소되어 청문회를 받았다. 래티모어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은 그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리즈 대학교에서 중국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주요 저서
- The Mongols of Manchuria (1934)
- Inner Asian Frontiers of China (1940)
- Pivot of Asia: Sinkiang and the Inner Asian Frontiers of China and Russia (1950)
논란
래티모어는 매카시즘 시대에 공산주의 혐의로 기소되어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소련의 최고 스파이”로 지목되었으며, 하원 비미활동위원회(HUAC)의 조사를 받았다. 래티모어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은 그의 경력과 명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래티모어에 대한 혐의는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 광풍 속에서 벌어진 정치적 박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