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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살리에리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년 8월 18일 - 1825년 5월 7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자이다. 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활동했으며, 궁정악장으로서 요제프 2세 황제를 섬겼다.

살리에리는 레냐고에서 태어나 주세페 타르티니의 제자였던 형 프란체스코 살리에리에게 기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후 베네치아에서 오페라 작곡가 플로리안 가스만에게 본격적인 작곡 수업을 받았다. 가스만은 살리에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데리고 빈으로 이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빈에서 살리에리는 빠르게 명성을 얻어 1774년에는 궁정악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4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그의 작품은 파리와 빈 등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에우로파 리코노슈타》(Europa riconosciuta), 《타라레》(Tarare), 《악수르, 오르무즈의 왕》(Axur, re d'Ormus) 등이 있다.

살리에리는 또한 뛰어난 교육자로서,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 카를 체르니 등 수많은 유명 음악가를 가르쳤다. 그의 교육 방식은 제자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음악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특히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그리고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 등은 살리에리를 모차르트를 질투하여 독살하려 했던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며, 실제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의 작품을 칭찬하기도 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서로 존경하는 동료 관계였으며, 오히려 모차르트 사후 살리에리가 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를 가르치기도 했다.

살리에리는 말년에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았으며, 1825년 빈에서 사망했다. 그는 빈첸츠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