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위원회
국가비상사태위원회(러시아어: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 по чрезвычайному положению, ГКЧП, Gosudarstvenny Komitet po Chrezvychaynomu Polozheniyu, GKChP)는 1991년 8월 19일 소련 공산당 강경파와 군부 세력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반대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결성한 비헌법적인 임시 통치 기구이다.
배경 및 결성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은 소련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야기했다. 공산당 내 강경파들은 이러한 개혁이 소련 체제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특히 연방 국가들의 독립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1991년 8월 20일, 새로운 연방 조약 체결을 앞두고 강경파들은 고르바초프를 포로로 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주도 세력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결성하고,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려 했다.
구성원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겐나디 야나예프: 소련 부통령, 위원장
-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 의장
-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
- 보리스 푸고: 내무장관
-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원회 제1부의장
-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
- 바실리 스타로두브체프: 소련 농민연맹 의장
- 알렉산드르 티자코프: 국영기업·건설·운송·통신 단지 협회 의장
쿠데타의 실패와 위원회의 해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언론 검열을 강화하고 집회를 금지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를 시도했지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쿠데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시민들에게 저항을 촉구했다. 결국 군부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고, 8월 21일 고르바초프는 대통령 직에 복귀했다. 쿠데타 실패 후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해산되었으며, 관련자들은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결과 및 영향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쿠데타 이후 각 연방 공화국들은 독립을 선언했으며, 1991년 12월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