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칠
건칠(乾漆)은 옻칠(漆)과 삼베, 모시, 종이 등의 섬유질 재료를 여러 겹 발라 형태를 만든 후 속의 심(心)을 제거하여 속이 비게 만드는 전통 공예 기법 중 하나이다. 주로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발달한 기술이다.
개요
건칠은 직물이나 종이를 심재(心材, core) 위에 여러 겹 붙이고 옻칠을 발라 굳힌 후, 심재를 제거하여 비어 있는 형태를 만드는 기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물은 매우 가볍지만 견고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습기나 벌레에 강한 특성을 가진다. 주로 불상, 승탑 내 사리장치, 의례용 기물, 그릇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마른 칠'이라는 의미에서 '건칠'이라 부르거나, 속이 비어 있다고 하여 '탈태칠기(脫胎漆器, 중국)', '조각탈건칠(造像脫乾漆)'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제작 과정
건칠 기법의 일반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심재 제작: 만들고자 하는 기물의 형태대로 흙, 나무, 소조(塑造) 등으로 심재를 만든다.
- 직물/종이 부착: 심재 표면에 들러붙지 않도록 표면 처리를 한 후, 삼베, 모시, 광목 또는 질긴 종이를 잘라 옻칠액을 섞은 접착제로 여러 겹 붙여나간다. 이때 각 층마다 옻칠을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필요한 강도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수십 번에서 수백 번 반복하기도 한다.
- 심재 제거: 옻칠층이 완전히 굳으면 기물을 절개하거나 심재를 깨뜨려 내부의 심재를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절개 부위는 다시 옻칠로 접합한다.
- 표면 마무리: 기물의 내외부 표면을 사포 등으로 곱게 갈아 다듬고, 최종적으로 옻칠을 여러 번 덧칠하여 매끄럽고 견고한 표면을 만든다. 필요에 따라 색칠, 문양 넣기 등 다양한 장식을 더한다.
특징 및 장점
- 가벼움: 속이 비어 있어 동일 크기의 목재나 금속 기물에 비해 훨씬 가볍다.
- 견고함: 옻칠의 강력한 접착력과 섬유질의 보강 효과로 매우 단단하고 쉽게 깨지지 않는다.
- 내구성: 옻칠의 특성상 습기, 부패, 해충에 강하여 수명이 길다.
- 형태 자유로움: 심재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기물을 만들 수 있다.
- 수리 용이성: 파손 시 옻칠과 직물을 이용하여 비교적 쉽게 보수할 수 있다.
역사 및 활용
건칠 기법은 고대부터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특히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 불상 제작에 많이 활용되었는데, 이는 건칠불상이 가벼워 이동이나 운반이 용이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장기 보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시대에 걸쳐 건칠 불상 및 기물이 제작되었으며, 대표적인 예로는 통일신라시대의 건칠보살좌상(국보), 고려시대의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 등이 있다. 일본에서도 나라시대에 건칠불상이 성행했으며, 중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건칠 기물이 제작되었다.현대에 들어서도 건칠 기법은 전통 공예 기술로서 전승되고 있으며, 조형 예술 및 공예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