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카를 차이스 예나(FC Carl Zeiss Jena)는 독일 튀링겐주 예나(Jena)에 연고지를 둔 독일의 축구 클럽이다. 정식 명칭은 Fußballclub Carl Zeiss Jena e. V.이며, 약칭은 FCC로 불린다.
창단 및 명칭의 유래
이 클럽은 1903년 5월 13일, 광학기기 제조 기업인 칼 차이스(Carl Zeiss) 사의 근로자들에 의해 회사 후원 형태의 축구 클럽으로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 명칭은 'Fussball-Club der Firma Carl Zeiss'였으며, 이후 1911년 'Fussball Club Carl Zeiss Jena e.V.'로 개칭되었다. 클럽명의 '카를 차이스'는 광학기기 제조업체 및 그 창업자였던 카를 차이스(Carl Zeiss, 1816–1888)에서 비롯된 것으로, 클럽은 설립 초기부터 해당 기업과 깊은 연관을 가졌다. 1917년 3월에는 '1. Sportverein Jena e.V.'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독 시절의 전성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 체제 아래에서 이 클럽은 여러 차례 개명을 거쳤다. 1946년 'SG Ernst Abbe Jena'로 재건되었고, 이후 SG Stadion Jena(1948), SG Carl Zeiss Jena(1949), BSG Mechanik Jena(1951), BSG Motor Jena(1951), SC Motor Jena(1954)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6년 1월에 현재의 명칭인 FC Carl Zeiss Jena로 재창단되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클럽은 동독 축구를 대표하는 최상위권 팀 중 하나였다. 동독 최상위 리그인 DDR-오버리가(DDR-Oberliga)에서 1963년, 1968년, 1970년 세 차례 우승했으며, 준우승을 아홉 차례 기록했다. 동독 컵 대회인 FDGB-포칼(FDGB-Pokal)에서도 1960년, 1972년, 1974년, 1980년 네 차례 우승했다. 특히 1981년에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European Cup Winners' Cup) 결승에 진출했으나 조지아(당시 소련)의 디나모 트빌리시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FC 카를 차이스 예나는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 육성의 핵심 거점 중 하나로 지정되어, 동독 대표팀에 33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독일 통일 이후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이 클럽은 2. 분데스리가에 진입했다. 1992년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위권에 올랐으나, 1994년 17위로 마감하며 강등되었다. 이후 주로 3부 리그와 4부 리그를 오가며 활동했다. 2006-07 시즌에는 2. 분데스리가로 승격했으나 2007-08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시 강등되었다. 2008년 신설된 3. 리가(3. Liga)의 창립 멤버가 되었으나, 2012년 강등되었다. 2017년에는 레기오날리가 노르도스트에서 우승하며 3. 리가로 승격했으나, 2020년 다시 강등되었다. 2021-22 시즌부터는 레기오날리가 노르도스트(4부 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홈구장과 라이벌 관계
홈구장은 아돕 호크 아레나(ad hoc arena im Ernst-Abbe-Sportfeld)로, 약 15,000여 명을 수용한다. 클럽은 튀링겐 지역의 로트-바이스 에어푸르트(Rot-Weiß Erfurt)와 지역 더비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두 팀 간의 경기는 종종 과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80년대 초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 맞붙은 웨일스의 뉴포트 카운티(Newport County)와 우정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프리시즌에 정기적으로 친선 경기를 치른다.
주요 선수
독일의 전 국가대표 골키퍼 로베르트 엥케(Robert Enke)가 이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미국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브라이언 블리스(Brian Bliss)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이 클럽에서 활약했다.
참고 사항
클럽 명칭에 '카를 차이스'라는 기업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 클럽은 현재 더 이상 차이스 사의 공장 클럽이 아니며 독립된 별개의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차이스와 아베(Ernst Abbe)의 전통과의 연계를 중시하고 있다. 독일 프로축구에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클럽명에 포함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