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년(DCCCLXXXVII)은 율리우스력 기준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으로, 9세기 후반의 한 해이다. 동아시아와 유럽 각지에서 왕위 교체와 권력 변동이 두드러지게 발생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
신라에서는 887년 1월에 황룡사에서 백고좌(百高座)를 마련하여 불교 경전에 관한 강의와 토론을 진행했으며, 당시 왕이 직접 행차하여 이를 참관하기도 했다. 같은 해 1월, 이찬(伊湌) 김요(金蕘)가 한주(漢州)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파병된 근위병들에게 붙잡혀 참살당했다.
같은 해 7월, 제50대 정강왕(定康王)이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하자, 정강왕의 유지에 따라 여동생인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제5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진성여왕은 신라 역사상 세 번째 여왕으로, 재위 기간(887~897) 동안 사면 실시와 조세 감면 등 민심 수습을 위한 조치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재위 기간 중 신라의 중앙 통제력 약화와 농민 반란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후삼국 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분수령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원종·애노의 난이 889년에 발생한 것은 이 시기의 사회적 혼란을 보여준다.
일본
887년은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 닌나(仁和) 3년에 해당한다. 고코 천황 사후 우다 천황(宇多天皇, 제59대)이 즉위하였다(재위 887~897년). 우다 천황이 즉위하자 후지와라노 모토쓰네(藤原基経)를 관백(関白)에 임명하는 조칙을 내렸는데, 조서에 사용된 "아형(阿衡)"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어 양측 사이에 정치적 대립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아코 사건(阿衡事件) 또는 아형 분의(阿衡の紛議)로, 우다 천황과 후지와라노 모토쓰네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킨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후지와라노 모토쓰네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관백으로 취임한 인물이다.
유럽
유럽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분열이 결정적으로 진행된 해이다. 887년 11월, 동프랑크 왕국의 귀족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무능하다고 평가되던 황제 카를 3세(비만왕, Charles the Fat)를 폐위하였다. 그의 조카인 아르눌프(Arnulf of Carinthia)가 동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출되었으며, 카를 3세는 저항 없이 왕좌를 내려놓고 은퇴하였다. 이 사건은 샤를마뉴 이후 유지되어 온 카롤링거 제국의 통일된 지배 체제가 사실상 종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베렝가리오 1세(Berengar I)가 이탈리아 왕으로 즉위하였다.
비잔티움 제국
887년 경에는 비잔티움 제국에서 레오 6세(Leo VI)가 황제로 즉위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상황이 이어지던 시기로, 이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 기록은 문헌에 따라 상세히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