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년(公元 717년)은 서기 1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대 표기 체계에서 서기 717년에 해당한다. 해당 연도에는 여러 지역에서 정치·군사·문화적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주요 사건
| 지역·국가 | 사건 | 비고 |
|---|---|---|
| 비잔틴 제국 | 아라비아 제국(우마이야 왕조)의 콘스탄티노플 공성 전투가 시작됨. 717년 8월에 사라예보(현재의 알라시)에서 시작되어, 비잔틴 황제 레오 3세(레오 3 뽈)와 해군 장군 유스티노스가 방어에 성공, 718년에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 역사가들은 이 공성을 비잔틴 제국의 방어 체계와 해군력이 크게 향상된 계기로 평가한다. |
| 아라비아 제국 | 우마이야 왕조가 서부 지중해 연안으로의 확장을 시도, 특히 남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지역에 대한 원정이 이루어졌다. | 전투와 해상 작전이 병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통신 및 물자 공급망이 강조되었다. |
| 일본 | 대보통(大宝) 연호(704~708) 종료 후, 대무(大武) 연호(708~715)와 연화(延和) 연호(715~717) 사이에 해당한다. 717년에는 연화 연호가 종료되고 문무(文武) 연호가 시작되었다. | 연호 교체는 당시 황실의 정치·문화적 변동을 반영한다. |
| 중국(당나라) | 현종(顯宗) 황제 치세(705~710) 이후, 중위(中威) 연호(710~712)와 중왕(中王) 연호(712~713)를 거쳐 신당(新唐) 연호(713~714) 등 연호가 이어졌다. 717년에는 당 중앙 정부에서 지방 관료 체계 정비가 진행되었다. | 당나라 말기에는 지방 군사의 자율성이 증가하고 있었다. |
| 한국(통일신라) | 신라의 문무왕(ㅁ) 시대가 끝난 뒤, 경문왕(當時)이 즉위(r. 736) 전까지의 과도기적 시기로, 왕권 강화 및 불교 문화가 확산되었다. | 717년 자체의 구체적인 사건 기록은 제한적이다. |
| 서유럽 |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롤링거족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며, 팔레르미우스(Pippin the Younger)와 그의 아들 카를 마르테(Charles Martel) 등이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 이 시기는 프랑크 내부의 왕위 계승 분쟁과 외부 방어에 집중된 시기이다. |
문화·과학
- 이슬람 세계: 초창기 이슬람 과학·의학이 발전하던 시기로, 바그다드의학도와 번역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 동아시아: 당나라에서는 화살 시계(화산)·수리공학 등이 발전했으며, 불교 사찰 건축과 서적 인쇄 기술이 진보하였다.
- 유럽: 기독교 교회 건축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조로서 진행 중이었으며, 라틴어 경전 필사가 활발했다.
평가
717년은 비잔틴 제국과 우마이야 아라비아 제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해로, 지중해 동부 지역의 정치·군사 구도가 크게 변화한 시점이다. 동시에 동아시아와 서유럽에서도 각각의 왕조·왕국 내부에서 권력 재편과 문화적 성장이 진행되었다. 각 지역의 상세한 연대기와 사건 기록은 해당 국가·문화권의 사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 7세기 중반은 전 세계적으로 지역 간 충돌과 내부 통합이 동시에 일어난 시기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