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680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윤년으로, 서기 680년, 즉 서력기원(AD) 기준 7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해는 이슬람 세계, 동로마 제국, 신라 등 여러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주요 사건
1. 우마이야 왕조와 이슬람 세계
- 무아위야 1세(Mu'awiya I)가 다마스쿠스에서 사망(680년 4월~5월경)했으며, 그의 아들 야지드 1세(Yazid I)가 우마이야 왕조의 두 번째 칼리프로 즉위하였다. 이는 칼리프 자리가 혈통에 따라 세습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 야지드 1세의 즉위에 반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 후사인 이븐 알리(Husayn ibn Ali)는 쿠파로 향하던 중, 680년 10월 10일(이슬람력 무하람 61년 10일, 아슈라) 이라크의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군대와 대치하여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카르발라 전투' 또는 '카르발라 참극'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분열을 심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어진 내전은 '제2차 피트나'로 불리며 692년까지 지속되었다.
2. 동로마 제국과 불가르족
- 680년 여름, 불가르족의 지도자 아스파루흐(Asparukh)가 다뉴브강을 건너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4세가 이끄는 군대와 옹갈 전투(Battle of Ongal)에서 격돌하여 승리하였다. 이 승리로 불가르족은 다뉴브강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기초가 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4세는 군사적 실패 속에서도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을 처형하였다.
3.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제6차 세계 공의회)
- 680년 11월 7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제6차 세계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한 가지 의지(단의론, Monothelitism)를 가졌다는 주장을 다루었으며, 174명의 주교가 참석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두 의지(양의론, Dyothelitism)를 확정하였다. 회의는 681년까지 이어졌다.
4. 서유럽
- 서고트 왕국에서 국왕 왐바(Wamba)가 8년간의 통치 끝에 680년에 폐위되어 수도원으로 강제 은퇴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에르비히(Erwig)가 왕위에 올랐다.
- 프랑크 왕국의 네우스트리아에서 궁재 에브로인(Ebroin)이 암살당하여 프랑크 정치에서 그의 영향력이 종식되었다.
5. 잉글랜드
- 캔터베리 대주교 테오도르(Theodore of Tarsus)가 680년에 해트필드 시노드(Synod of Hatfield)를 소집하여 잉글랜드 교회가 단의론 이단과 무관함을 선언하였다.
- 휘트비(Witby) 수도원의 수녀원장 힐다(Hilda)가 680년 11월에 사망하였다.
- 역사가 베다(Bede)가 7세 때인 이 해에 웨어머스(St. Peter's at Wearmouth) 수도원에 들어가 교육을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6. 신라
- 신라는 금관군(金官郡)을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승격하였다. 이는 신라의 지방 행정 체계 정비의 일환이었다.
7. 일본
- 일본에서는 덴무 천황이 병든 우노 사라라 황녀의 회복을 기원하며 야쿠시지(薬師寺) 사원 건립을 시작하고 100명을 승려로 삼았다.
주요 인물 (출생 및 사망)
- 출생: 후지와라노 무치마로(737년 사망), 겐쇼 천황(748년 사망), 우마르 2세(720년 사망) 등.
- 사망: 무아위야 1세(우마이야 왕조 창시자), 후사인 이븐 알리(시아파 제3대 이맘), 힐다(휘트비 수녀원장), 바틸드(프랑크 왕비), 에브로인(네우스트리아 궁재) 등.
연호 및 기년
- 당(唐)나라에서는 조로(調露) 2년에서 영륭(永隆) 원년으로 바뀌는 해였다. 당 고종 재위 31년, 신라 문무왕 재위 20년에 해당한다.
참고
680년은 세계사적으로 이슬람 내부의 분열이 결정적으로 고착화되고, 불가리아 제국의 성립 기반이 마련되며, 기독교 교리 논쟁이 정리되는 등 다방면에서 전환점이 된 해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