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645년(서력기원 645년, AD 645)은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는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 정관(貞觀) 19년, 신라 인평(仁平) 12년, 일본 다이카(大化) 원년, 고구려 보장왕 4년, 백제 의자왕 5년에 해당한다. 이 해는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급변한 시기로, 특히 고구려-당 전쟁 발발과 일본의 다이카 개신 착수라는 두 가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해이다.
주요 사건
한반도 및 중국
제1차 고구려-당 전쟁 발발
645년은 당 태종(太宗)이 친히 대규모 원정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해이다. 644년부터 제한적인 충돌이 있었으나, 645년 5월 당군이 요하를 건너며 본격적인 제1차 고구려-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군은 요동, 백암(白巖), 비사(卑沙), 개모(蓋牟)성 등 요동 방어선의 주요 거점을 차례로 함락시켰고, 이어 요동성(遼東城)을 무너뜨리고 안시성(安市城)으로 진격하였다.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은 고연수, 고혜진에게 15만 병력을 주어 구원에 나서게 했으나, 이 지원군까지 당군에게 패배하였다. 그러나 안시성에서는 성주 양만춘(楊萬春)으로 알려진 지휘관 아래 고구려군이 끈질기게 항전하여, 수적으로 우세했던 당군을 막아냈다. 식량 보급의 한계에 부딪힌 당 태종은 10월 부대 철수를 명령하며 전쟁을 종결하였고, 이로써 고구려는 제1차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얻었다.
백제-신라 전쟁
같은 해 음력 5월, 백제 의자왕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신라에서 병력을 징집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틈을 타 신라의 일곱 성을 습격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신라는 장군 김유신(金庾信)을 보내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의 7개 성을 함락시키고, 매리포성(買利浦城) 전투에서 백제군을 격파하여 2천여 명의 목을 베는 등 반격에 성공하였다.
일본
을사의 변(乙巳の変)과 다이카 개신
645년 7월 10일, 일본에서 황자 나카노오에(中大兄)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가 이끄는 쿠데타 세력이 왕궁에서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를 암살하는 을사의 변(乙巳の変)이 발생하였다. 이후 고교쿠(孝德) 천황이 퇴위하고 동생 고토쿠(孝德) 천황이 즉위하였다. 나카노오에는 황태자 겸 총리대신에 임명되었다.
고토쿠 천황은 연호를 다이카(大化)로 정하고 수도를 나니와(難波, 현재의 오사카)로 옮기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무렵 시작된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은 중국의 유교 사상과 정치 제도를 참고한 토지 개혁과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 구축을 내용으로 하였다. 다이카라는 연호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연호 체계이며, 이는 중국의 연호(년호)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서아시아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은 300척의 함대를 이끌고 아랍(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알렉산드리아를 탈환하였다. 그러나 아랍 측 이집트 총독 압둘라 이븐 사드가 다시 공격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재탈환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아랍은 최초의 해군 건설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유럽
라벤나의 비잔틴 총독(엑사르크) 플라토가 포 강 유역 남부를 침공했으나, 랑고바르드(롬바르드) 왕 로타리에게 파나로 강(모데나 부근)에서 패배하여 약 8,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웨식스 왕 켄왈은 머시아 왕 펜다에 의해 왕국에서 추방되어 이스트앵글리아로 망명하였다.
문화적 사건
- 일본에서 센소지(浅草寺)가 창건되었다.
- 중국의 승려 현장(玄奘)이 16년간의 인도 순례를 마치고 당으로 귀국하여, 당 태종에게 영예로운 환영을 받았다.
- 당나라 시안의 자은사(慈恩寺)에 대안탑(大雁塔)이 건립된 시기로 추정된다.
탄생
- 신라의 화랑 관창(官昌)
- 발해의 초대 태왕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
참고 자료
- 김부식,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제육 의자왕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Graff, David, Medieval Chinese Warfare 300–900, Routledge, 2002
- Nussbaum, Louis-Frédéric, Japan Encyclopedia,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