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六二五戰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조선인민군(북한군)이 삼팔선(38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기습적으로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한국전쟁(Korean War)이라고도 불리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으로 부른다.
발발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분할 점령하면서 분단이 시작되었다. 1948년에는 남쪽에 대한민국,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되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으로부터 군사적 지원과 승인을 얻어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공개된 구소련 비밀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수차례에 걸쳐 남침을 요청하였고, 스탈린은 국제정세 변화를 고려하여 이를 최종 승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쟁의 경과
전쟁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초기 전투(1950년 6월~9월)에서 북한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소련제 T-34 전차를 앞세워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갔다. 둘째, 1950년 9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유엔군과 한국군은 38선을 넘어 북진, 10월에는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셋째, 1950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인민지원군이 대규모로 참전하면서 전세가 다시 역전되어 유엔군과 한국군은 1·4 후퇴(1951년 1월 4일 서울 재함락)를 겪었다. 넷째, 1951년 중반 이후 전선이 38선 인근에서 고착화되었고,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2년여 간의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휴전과 결과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3년 1개월간의 전쟁은 '휴전'으로 일단락되었다.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법적으로 전쟁 상태는 종료되지 않았다.
이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약 200만~300만 명(민간인 포함)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 중국군 등이 참전하였으며,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 전역이 폐허가 되었고, 약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남북 간의 적대적 대치 상태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명칭의 다양성
대한민국에서는 '6·25 전쟁', '6·25 사변', '한국전쟁'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미국에 저항하고 조선을 돕는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구권에서는 'Korean War(한국전쟁)' 또는 'The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