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는 서력기원(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501년부터 600년까지의 100년간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하며, 세계 각지에서 중요한 변혁이 일어난 시기이다.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에서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재위 527~565년)가 집권하여 전성기를 맞았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로마법을 집대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Corpus Juris Civilis)을 편찬하였고,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앞세워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하였다. 한편 525년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서력기원(Anno Domini) 개념을 처음 창시하였는데, 이는 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당대인들이 스스로를 '6세기'라고 인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가 지속되다가 581년 수(隋)나라의 문제(양견)가 북주를 멸망시키고 북중국을 통일하였으며, 589년에는 남조의 진(陳)나라를 멸망시켜 약 400년에 걸친 분열 시대를 종식시키고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남조에서는 502년 양(梁)나라의 무제(소연)가 제(齊)나라를 대체하여 양나라를 건국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이다. 백제는 538년 사비(현재의 부여)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칭하였으며, 중앙 관서로 6좌평·22부를 설치하고 16관등제를 확립하였다. 또한 백제의 성왕(재위 523~554년)은 노리사치계를 통해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다. 신라는 이 시기에 한반도 중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가야는 신라에 의해 차례로 편입되어 소멸하였다. 무령왕(재위 502~523년) 당시의 백제는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로 그 문화적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쿠스 마그누스가 504년 게피드족을 카르파티아산맥 주변에서 추방하는 등 게르만 여러 왕국이 세력을 확장하였다. 프랑크 왕국도 팽창을 거듭하여 중세 초기 유럽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종합하면, 6세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존의 고대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중세적 질서가 태동하는 전환기로서의 성격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