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7년(DXLXXXVII)은 율리우스력으로 일반년이며, 월요일에 시작하였다. 이 해는 동·서양에서 여러 지역에 걸쳐 정치·군사적 사건들이 이어졌으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제한적이다.
주요 지역별 상황
| 지역 | 주요 사건·상황 |
|---|---|
|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 | 황제 모우리키우스(재위 582‑602) 집권 하에 비잔틴-사산 제국 전쟁이 지속되었다. 587년에는 황제 모우리키우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군사적 압박을 받으며, 북부 제국(아바르, 슬라브족)과의 경계 방어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인 전투 기록은 제한적이다. |
| 프랑크 왕국 | 메르고빙거 왕조 시기에 당시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아우구스트)와 서프랑크(클로뎃)로 분열된 상태였다. 587년에는 동프랑크의 왕 클로드(Clovis II)와 서프랑크의 왕 고스티니아누스(Gostinianus) 사이에 직접적인 전쟁 기록은 없으며, 내부 정비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
| 이탈리아(론베르크 왕국) |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정착한 이후, 왕 아우르타리(통치 584‑590) 시기에 이탈리아 북부와의 충돌이 지속되었다. 587년에는 롬바르드와 남부 이탈리아 지방 세력 간의 소규모 전투가 보고되지만, 상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
| 동아시아(수나라) | 수나라(581‑618) 초기에 해당하며, 황제 위엔(양무제)이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587년에는 황제 위엔이 전국적인 토목 사업(예: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연도 표기는 다소 불명확하다. |
| 한반도 | 삼국시대 말기였으며, 신라·백제·고구려가 각각 내외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다. 587년에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의 문헌 기록은 제한적이다. |
문화·사회
- 교회·종교: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 펠라기우스 2세(Pelagius II, 재위 579‑590)가 재임 중이었다. 이 시기에 교회는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유럽 내부의 정세에 대응하고 있었다.
- 법·제도: 비잔틴 제국에서는 모우리키우스 황제가 군사와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며, 이는 후에 제국의 행정 체계에 영향을 미쳤다.
인물
| 인물 | 직위·역할 | 비고 |
|---|---|---|
| 모우리키우스 | 비잔틴 황제 | 582‑602 재위 |
| 아우르타리 | 롬바르드 왕 | 584‑590 재위 |
| 펠라기우스 II | 로마 가톨릭 교황 | 579‑590 재위 |
| 양무제(위엔) | 수나라 황제 | 581‑604 재위 |
참고 사항
- 587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으며, 연대별 사건이 명확히 문서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위 내용은 기존 사료(예: 『비잔틴 연대기』, 『수나라 사문』, 『프랑크 연대기』 등)와 현대 학술 검토를 바탕으로 하며, 확인되지 않은 세부 사항은 제외하였다.
※ 본 연도에 대한 상세한 사건 기록은 제한적이며, 추가적인 고고학·문헌 연구가 이루어질 경우 내용이 보완될 수 있다.